기술의 발전은 항상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 ‘풍요’란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데,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먹고 입고 쉬면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풍요일 것이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기본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사회에서의 ‘풍요’란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산업화 이후 사회 경제적인 복잡도가 증가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즉,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또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의 ‘풍요’는 무엇일까? 바로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을 줄이고, 개인이 보다 가치 있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풍요’일 것이다.
모바일과 클라우드 산업 성장의 원동력인 ‘보다 편리한 사용자 경험’이 바로 이러한 ‘풍요’의 다른 표현이다. 모바일과 클라우드 산업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사용자가 별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들을 없애면서도 이전과 동일한 또는 그 이상의 효용을 얻는 경험을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그 성과들이 해당 산업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물리적 출입보안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물리보안 자격인증 기술 역시 출입하는 사용자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꾸준하게 발전되어 왔다. 열쇠에서 보다 소지가 편리한 RF카드로, 또 소지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생체인식으로, 그리고 발전하는 모바일 기술에 발 맞추어 스마트폰으로, 출입에 필요한 자격인증 기술은 발전되어 왔다.
그렇다면, 물리보안의 자격인증 기술에 있어서 사용자들 또는 업계 종사자들이 상상해 왔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편리한 사용자 경험’은 무엇일까? 바로 ‘워크스루(Walk-through)’이다.
워크스루란 바로 출입자가 별도의 자격인증을 수행하기 위한 행위 없이, 단순히 걸어 들어가면서 자동으로 자격인증이 수행되고 출입문이 열리는 것을 말한다. 즉,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걸어가기만 하면 문이 열리는 것이다.
물리 보안 업계에서 ‘워크스루’ 단어는 AI 기반의 얼굴인식기의 보급이 본격화된 4~5년 전부터 많이 회자되었는데, 당시에는 원거리에서 얼굴인증을 수행할 수 있는 AI 얼굴인식 기술을 강조하는 하나의 사용 예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원거리 인증이 가능하다 보니 출입하려는 의도가 없는 사용자들도 인증되는 사례가 많았고 실제로 현장에 적용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워크스루’의 전제는 정확한 거리 측정과 이를 통한 출입의도의 확인인데, 원거리 얼굴인식 기술 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UWB 기술이 대두되면서 다시금 ‘워크스루’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정확한 거리측정이 가능한 기술이기 때문이다.블루투스 저전력 프로토콜(BLE) 등의 이전 RF기술이 2~3M의 큰 편차로 정확한 거리 측정이 어려웠던 반면에 UWB 기술은 5~10cm 편차로 출입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한 거리측정이 가능하다. 현대자동차의 GV60의 경우 UWB 기술을 이용하여 차량의 문을 자동으로 여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모든 기술의 상용화에 있어서는 반드시 넘어야할 벽이 있고, UWB 기술의 상용화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UWB기술의 상용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UWB가 탑재된 스마트폰의 보급이다. UWB의 기술적 가능성은 2~3년 전부터 회자되었으나 관련 업계에서 제품개발을 망설였던 것은 UWB가 탑재된 스마트폰의 보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스마트폰의 탑재된 UWB를 스마트폰 제조사의 앱이 아닌 일반 앱에서 API를 이용해서 제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제조사의 앱이 아닌 일반 앱에서 접근의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변화를 보면, UWB 상용화를 위한 벽들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가 뚜렷하다. 애플의 경우 2019년 9월 아이폰 11을 시작으로 이후 제품들에 UWB를 탑재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2020년 8월 갤럭시 노트 20에 UWB 탑재를 시작한 이후 주력 모델들에 지속적으로 UWB를 탑재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의 스마트폰의 라이프사이클이 2~3년임을 감안하면 2025년 정도에는 대다수의 사용자들이 UWB가 지원되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iOS와 안드로이드의 UWB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도 공개되고 있다. iOS의 경우 ‘Nearby Interaction’이라는 이름으로 UWB를 이용하여 거리 및 방향 측정이 가능한 API를 2020년 10월에 공개했다. 안드로이드의 경우에는, 2021년 10월 공개된 안드로이드 12 버전에서 UWB 관련 기능을 지원하였으나 API는 제조사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측은 2022년 6월 제트팩 업데이트를 통해서 일반 앱 개발자들도 UWB API를 사용하도록 그 문을 열었다.
사실상 UWB 상용화의 벽은 사실상 허물어졌거나 허물어져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은 문제는 물리적 출입통제 시장에서 UWB를 이용해서 안정적이고 신뢰성 있는 워크스루를 구현해 내는 것이다.
모든 기술이 마찬가지이지만, 기술 그 자체가 사용자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기술을 이용하여 진정으로 편리한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 내어 야만 ‘풍요’가 실현되는 것이다. 즉, 기술을 이용하여 편리한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 내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풍요’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와 같은 엔지니어들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편리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상용화된 UWB기술을 물리적 출입통제에 적용하여, 출입자들이 인증 받은 스마트폰만 소지하고 있다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안전하게 출입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슈프리마 역시 2022년 피라(Fira) 컨소시엄에 가입하고 2023년 중 업계 최초로 UWB 기반 워크스루 제품 및 서비스를 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10년 전을 생각해보면, 물리적 출입통제시장에서 워크스루 출입인증은 그저 상상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수많은 상상이 현실이 되고 있는 요즘, 워크스루 출입인증 역시 현실이 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출입자에게는 조금의 부담과 긴장으로 여겨졌던 출입인증이 1~2년 후에는 별도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행위로 여겨지는 조금 더 풍요로운 모습을 기대해 본다.
[글_ 최성빈 전무·슈프리마 기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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